본문
[동부권역]
왕궁리유적
- 주소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 대표번호063-859-4631
용화산 능선 끝자락 무왕의 숨결을 간직한 왕궁터!
1월 1일 해맞이 계획은 어디로 하고 있는가?
단연 왕궁리유적을 강력 추천한다. 드넓은 평야지대에 높지 않은 구릉으로 은은하게 솟은 왕궁리유적은 멀리 평야지대를 건너 아스라이 나지막이 펼쳐진 산 위로 떠올라 대지를 비추고 왕궁리오층석탑을 만난다.
바다와 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신비감의 정체는 1000여 년의 시간을 움켜진 왕궁리오층석탑(국보 289호)으로 그 매력은 바다와 산의 유명해맞이와 견주기에 충분하다.
매일매일 연출하는 백제의 밤은 전국의 사진 작가들이 탑을 중심으로 펼쳐진 밤하늘의 별일주 사진을 찍기 위해 서두르게 만든다.
왕궁리유적은 들어가면서 마주하는 벚나무들과 건물터, 후원과 후원의 곡수로, 환수로, 고대 화장실 터, 금, 유리공방 터를 끌어안고 있는 궁장은 주변 평야 지대와 아주 멀리 있는 산을 배경으로 의도적으로 구성된 고대 정원의 백미 이다.
왕궁탑에서는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가 출토되었으며 탑의 형식으로 보아 백제계로 판단하고 있다.
왕의 기운을 받으려면 왕궁리유적으로 간다. 매년 백제왕궁 해맞이 행사와 백제왕궁 천년별밤캠프 등 왕궁리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고백을 위해 찾는 또 하나의 고백의 성지이다.
왕궁리오층석탑이 황금탑으로 변하는 시간대가 있다는데, 언제일까?
감동의 시간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이다.
백제왕궁의 수수께끼는 백제왕궁 박물관 관람을 통해서 풀어보시라~!
왕궁리 오층석탑
백제부흥을 꿈꾸던 무왕의 염원이 담겼을까.
백제왕도를 지키기 위해 홀로 서 있는 석탑. 왕궁리 오층석탑은 국보 제289호로 지정돼 있다.
우뚝 서 있는 모습에서 격동의 그 시기에 스스로의 중심을 잃지 않고 행복을 누리고 싶어 천도를 단행했던 당시 무왕의 기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야 할까?
백제왕궁터
생생한 현장.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걸?
백제왕궁의 축조과정과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는 터.
왕궁의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금·유리·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발견되었다.
백제 후원
만천하에 드러난 위용, 굉장하네~~
격동의 시기였던 7세기, 당시 백제의 부흥과 번영을 꿈꾸며 무왕이 천도를 단행하고 경영했던 왕궁, 임금으로서 무왕이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안식처 삼아 머물렀던 역사의 현장이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왕 35년 궁남에 못을 파고 20여리에서 물을 끌어들였으며, 못의 네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속에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모방했다.”
“무왕 39년 춘삼월에 왕이 비빈들과 함께 대지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
“의자왕 15년 2월 태자궁을 매우 화려하게 수리하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건립했다.”
삼국사기는 백제의 조경을 이같이 묘사하고 있다.
왕궁리유적 출토 기와
타임머신 출발~~!!
전시관 앞의 왕궁리유적 출토 기와는 직접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다.
지난 1989년부터 왕궁리유적 발굴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기와들은 건물이나 담장 지붕에 사용된 것인데, 다른 유물에 비해 출토되는 양이 많고 시대별로 만드는 방법이나 방법을 쉽게 구분할 수 있어서 유적의 연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열쇠다.
한낱 기와 한 장에 불과했던 것이 시대를 왕래하는 출구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주변 명소
미륵사지, 국립익산박물관, 서동공원, 마한관, 보석박물관
여행톡목록
등록된 여행톡이 없습니다.